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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잔치국수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충남 아산시 만복국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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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요리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 의외로 역사가 짧은 음식이다. 애초에 면인 소면부터가 항목에도 나오듯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인들이 주로 먹는 면요리는 메밀로 만든 면이었다.[3]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시의전서 등 조선 시대의 레시피들을 봐도 메밀로 만드는 면의 요리법이 주류였으며, 일제강점기의 조선인과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은 메밀면, 일본인들은 소면'이라고 하며[4] 정체성을 부여할 정도로 한국의 전통면은 메밀면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세종 시절의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잔치 때마다 국수를 내느라 메밀이 부족해졌다면서 각 지역에 새로 메밀을 할당하는 기사가 있을 정도[5]로 전통적으로 잔치 때 먹었던 국수도 이러한 메밀 국수들이었다. 즉 잔치국수라는 이름과 달리 정작 조선시대엔 잔치 때 먹은 적이 없는 음식이다. 흔히 나도는 '조선시대에는 밀이 귀해서 잔치 때나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잔치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민간어원은 사실이 아니다. 진짜로 양반들이 잔치 때 먹고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있긴한데, 안동건진국수다. 잔치국수랑은 무관하고 오히려 칼국수에 더 가깝다.

다만 저 경성번창기의 글은 보다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다. 일본인이 조선을 소개하면서 쓸 수 있는 표현일수는 있는데, 그럼 소바의 글과 충돌한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밀 생산이 활발했던건 맞는데, 타이쇼 시대에 들어서는 50만ha 에 이르렀다는 기술이 있다. # 그렇다면 밀과 메밀의 생산량 격차 (밀 300~600kg/10a, 메밀 80~100kg/10a) 를 감안하면 메밀이 당시에 일본에서 흔한 물건은 아니었으리라 생각은 된다. 메밀의 생산이 현대에도 홋카이도의 비중이 높은 것을 보면, 1890년대에야 홋카이도에 일본인들이 넘어가는 점도 영향은 있으리라 본다.

또한 육수 역시 조선의 레시피를 보면 고기를 삶은 육수에 간장을 넣어 만든 육수 장국이 주된 국물이었으며, 또는 김치국물을 주로 육수로 사용했다. 김치국물에 고기육수를 넣은 육수도 사용되었다. 조리법 역시 국수를 따로 삶은 다음에 육수에 면을 넣는 방식이었다. 멸치 육수는 일본의 국물용 건어물인 니보시(煮干し)를 사용한 요리의 영향으로 도입된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소면과 멸치 육수 모두 일제 강점기가 아닌 19세기 초 조선 후기부터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이긴 한데, 일제강점기의 글들을 보면 둘 다 조선의 전통적인 것은 아니라는 인식은 이어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잔치국수가 보급된 것은 해방 이후 미군정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이 지원해주는 대량의 밀가루를, 일본인들이 두고 간 소면 제조 공장이나 건멸치 제조 공장을 이용해서 만들어 낸 재료들이 결합해서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잔치국수'라는 명칭이 쓰인 초기 문헌으로는 1945년 2월 발행된 노천명의 두 번째 시집 '창변'에 수록된 시 '잔치'가 있다.[6]

출처: 나무위키


주소: 충남 아산시 용화고길 93 만복국수집

더운 여름 국수와 보쌈이 생각나서  만복국숫집에 갔습니다.


보쌈 국수세트 32,000원 시켰습니다!!



보쌈 등장!! 웅장하네요 ㅎㅎ

쫄깃하니 담백하고 너무 맛있습니다.


국수도 정말 맛있습니다.

호로록 먹었고 국물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보쌈과 국수가 생각날 땐 만복국숫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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